갈라디아서 2장 중반부

 

설교의 내용은 사도바울이 유태인들과의 할례와 무할례에 대하여 논쟁을 하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도바울이 말한는 것은 자신은 사도이다 라고와 사도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며, 그러기 때문에 할례와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징표라는 것이다.

 

할례가 처음 시작된 것은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소돔과 고무라로 가는 천사를 은연중 대접하고 천사가 떠나면서 내년 이맘때 아들을 보리라고 한말과 할례를 실시하라는 말에 순종하는 사건이 있다. 이사건으로 인하여 100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아들로 얻었고,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되었음.

 

두 번째 사건은 출애굽당시 길갈에서 여리고성과 가나안족속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할례를 실시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 결과 여리고 성을 정복하였고 가나안 정복에 발판을 마련한 것을 볼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곳에서 할례를 실행하는 것은 올치 안은 행위라고 볼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했을 때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태인들과 사도바울이 할례와 무할례에 대하여 서로 논증하고 있으나, 할례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천국에 갈수 있는 것은 예수님에 보혈의 피로만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례도 언약에 대한 증표요, 십자가의 보혈도 언약의 증표이며, 진정한 구원의 수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구원은 예수님에 보혈의 피로만 가능한 것이며, 그 어느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임.

그것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범한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 나뭇잎의 옷이 아닌 양을 잡아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주심으로 아담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던 일의 결과로 나타난 것임. 따라서 한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죄인되었던 우리를 한분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임.

것이 복음의 진리인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새벽시간을 통해 얻은 주된 내용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하나더 생각해봐야 할 사건이 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환도뼈가 이골되면서 까지 기도를 하고 얻은 에서와의 화친을 의심하고, 다른길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딸이 그 거민의 아들들이 사랑하기에 간간을 하면서 까지, 자신들에게 줄 것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그 거민들에게 할례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며, 그 후에 누이를 주겠다고 권했으며, 할례후 삼일이 되는 날 쳐들어가서 모두 도륙을 하는 사건을 볼 수 있다. 그럼 이건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사건임.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 없이, 진정한 사랑을 동반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가장한 모습으로 다가간다면 그 상대의 영혼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